20대, 우리의 성(性) 인식

'요새 애들'이 "모텔이 뭐가 어때!"라고 외치는 사회. 우리, 性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아저씨도 갔었잖아요!" 숙박업체를 찾아주는 모 어플리케이션의 광고

 

 

중년의 아저씨로 분한 연예인이 등장해서 혀를 끌끌 찬다.

“모~텔 앱? 아니, 요새 애들은...”

 

뒤이어 들려오는 요새 애들의 일격.

“아저씨도 갔었잖아요!”

 

군가가 흘러나오고, 요새 애들이 또 한 번 외친다.

 

뭐가 어때!”

 


위에 언급된 대사는 호텔, 모텔 등의 숙박업체를 찾아주는 한 애플리케이션의 광고 문구다. 이 광고는 선정성 논란, 청소년에게 무방비하게 노출이 되어 부적절하다는 논란, 그리고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보여준다는 논란까지 따라붙긴 했지만 어쨌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광고는 젊은이, 즉 20대들의 달라진 성 인식 및 성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성’은 아직 금기시된다. 아이가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면 "학이 물어다 주지"라고 말할지언정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어른은 없다.

 

하지만 ‘요새 애들’은 조금 다르다. 어디 ‘모텔’ 같은 데를 가느냐고 호통을 치는 어른들에게 “뭐가 어때!”라고 외칠 수 있으며, 대학가의 모텔촌은 밤낮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처럼 20대들의 성 관념은 이전보다 확실히 개방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 우리는 일부 20대들의 성 관념이 전반적으로 왜곡되어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Scene 1 "암이랑 콘돔이 무슨 상관이죠? 피임약이 그렇게 안 좋나요?"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한 학우의 질문

 

위 글은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업로드되었다가 뭇 여학우들의 지탄을 받은 게시물이다. 이는 일부 젊은 층의 부족한 성 지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콘돔은 피임뿐만 아니라, 성병 예방에도 그 목적이 있다. 어지간한 성 접촉성 질환은 콘돔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 역시 콘돔이 완전한 예방법은 될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특히 자궁경부암과 같은 질환은 그 매개체가 남성이기 때문에 '콘돔 사용으로 남성에게만 피임의 의무를 지운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콘돔 미사용으로 남성 역시 여성으로부터 성병을 옮을 수 있다. 따라서 양쪽 모두를 위해 콘돔 사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임약은 경구피임약과 사후피임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말 그대로 성관계 후에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은 경구피임약 성분의 10~20배의 고용량으로, 복용 시 몸에 출산만큼 큰 충격을 준다. 매일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경구피임약은 월경전증후군의 치료 등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만큼 사후피임약보다 그 부담이 훨씬 덜하지만, 여전히 출혈, 두통, 자궁경부암, 그리고 혈전증까지의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력에 따라 복용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꺼리는 여성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상호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로 남성의 일방적인 강요 하에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나의 잘못된 성 지식으로 인해 고통받을 상대방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 우리는 성에 눈을 뜨기 전, 올바른 성 지식을 먼저 가져야 할 것이다.

 


#Scene 2 여자는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켜야 해요!


'혼전순결'의 개념은 앞서 언급했듯 20대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화하면서 그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으나, 일부는 여전히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여성에게만 강요된다는 점에서 가부장적이며 올바르지 않은 성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혼전순결'은 그 단어 자체도 적절하지 않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순결이란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결혼 전 성관계 경험의 여부가 '깨끗함'의 잣대가 될 수 있을까? 정숙과 정조 관념은 옛날 옛적부터 여성에게 강요되어왔다. 조선 시대에는 재혼한 과부의 자손에게는 관직을 주지 않았으며, 현직 관리도 과부와 결혼하면 관직을 박탈당해야 했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여성들 역시 외간 남자에게 손만 잡혀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러한 정조 관념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여성의 성 경험은 숨겨져야 하지만 남성의 성 경험은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어 술자리에서 회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덕분에 '남자는 열쇠, 여자는 자물쇠'라는 질 낮은 발언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이 놀랍게도 아직 존재한다.

어떤 이의 혼전 관계의 여부는 온전히 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돼'와 같은 생각으로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성 인식임이 분명하다.

 


#Scene 3 대학교 축제 주점에서 여자 연예인 포스터 걸고, "먹고 싶지?"


▲대학 축제 당시 여자 연예인 성희롱 논란 관련 기사

 

지난 가을, 20대의 잘못된 성 문화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모 대학교 축제에서 주점을 홍보하기 위해 여자 연예인의 화보를 임의로 도용해 그 옆에 도가 지나친 '19금' 문구를 잔뜩 써 붙여 놓은 것이다. 단지 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여러 학교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성희롱의 대상이 된 여자 연예인이 관련 학생들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이를 계기로 대학 축제 문화가 점점 퇴폐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볼 필요성이 대두됐다.

 

대학생들의 왜곡된 성 관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매해 축제 주점에 도 넘은 선정적 홍보 문구를 써 붙이고 짧고 얇은 옷차림으로 서빙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이전부터 대학 내 성 상품화를 우려하는 시선은 항상 존재했다. 비단 여성의 성 상품화뿐만이 아니다. 모 대학교에서는 일종의 보디빌딩 대회인 '몸짱 선발대회'를 열어 남성 성상품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을 단순히 '꼰대'들의 잔소리로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성 인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나라의 젊은 층에게 성이라는 것의 개념을 잘못 자리 잡게 했을까?

 

#첫째, 부족한 성교육

성에 대한 개념이 형성될 시기의 아이가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남자와 여자의 성교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설명해주고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이에 대한 책임감을 설명할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우리나라는 이렇게 성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부끄러워하는 어른들의 흐지부지한 대답으로부터 시작되는 부족한 성교육이 결국 잘못된 성 인식을 길러내는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조선 시대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던 가부장적 사회인식이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사회 전역에 성에 대해 감추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1927년 신문에 처음으로 성교육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성에 관해 이야기하기 꺼렸으며, 1982년 교육부가 본격적인 성교육의 시행을 발표하기 전까지 여학생들에게 일방적 순결을 요구하는순결’ 교육만을 지속하였다. 더욱더 안타까운 점은 1982년 이후의 본격적인 성교육에서는 흡사 생물 시간에 배우는 듯한 정도의 남녀 성기에 대한 개념과 남녀는 함께 한 방에 있으면 안 된다 같은 추상적인 성교육만을 시행하였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성에 대해 가장 많은 호기심을 가지는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성교육을 받지 못한 현대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곳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이러한 매체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성 관련 지식에서 오류가 있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자료들뿐이다. 성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성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어져 있는 자료들을 통해 청소년들은 성을 접한다. 그리고 이들의 성 관념은 왜곡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계속해서 반복되는 굴레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에 대한 무지는 뫼비우스의 띠가 될 것이다.

 

#둘째, 뿌리깊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차별적 성 인식

#Scene 2의 '순결'의 예가 그렇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 '정절' 프레임은 여성의 성적 자유를 옥죈다. 성 경험이 없는 여성과 남성이 합의하고 성관계를 가질 경우 여성의 '순결'을 남자에게 '준 것'이 된다. 또한, 남성의 성욕은 '주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며 이는 급기야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우리는 종종 성범죄 피해자를 '그러게 야한 옷을 입지 말았어야지'와 같은 말로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남성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좋지 않았냐'는 말로 누군가에게 평생의 큰 트라우마로 남을 피해 사실을 웃어넘긴다.

 

▲교육부가 지난 3월 전국 교육청에 전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일부 내용

 

우리는 여러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가 잘못된 성 관념을 개선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야 한다. 세계 10대 임신율이 낮은 나라로 꼽히는 네덜란드는 'Long Life Love' 프로그램을 1980년대 후반 정부보조로 개발했다. 이는 10대들의 건강과 성관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거의 모든 중등 교육에 성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생물학적 성교육뿐만 아니라 가치나 태도, 대화의 기술 등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독일의 경우는 1992년 의무교육으로 강화하고 실제 성관계 시 체위를 포함한 실제적 내용으로 성교육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피임법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뜬구름 잡는 식의 성교육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프랑스 또한 학교에서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면서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성생활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며 연간 30~40시간을 할애해 성교육을 진행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처럼 실질적인 내용으로 성교육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부장적, 성차별적 인식 역시 현행 성교육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어 이 또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부가 지난해 3월 전국의 각 시도 교육청에 전달한 성교육 표준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이 성교육 표준안은 남성의 성욕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여성은 한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 데 비해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과 널리 성교할 수 있고, '남자는 돈, 여자는 몸'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데이트 비용으로 많이 지출하는 남자가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는 과정에서 데이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서술하는 등 기저에 깔린 성차별적 인식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우리나라 성교육,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성의 개념을 바로잡는 것은 수백 번을 말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성 인식과 부족한 성 지식. 이 중 전자는 성교육의 개선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성에 대한 뿌리 깊은 가부장적, 차별적 사회 분위기를 깨는 것은 개개인이 스스로가 나도 모르게 그러한 인식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또한, 본인이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않고 그러한 발언을 하지 않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주위의 누군가가 성에 대한 왜곡된 발언을 농담처럼, 가볍게, 스스럼없이 내뱉는다면 적어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개인의 '용기'가 모인다면 우리는 올바른 성 관념을 가진 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