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의대정원 확대, 그 속의 어두운 그림자

의대 정원 확대와 총선은 어떠한 연관이 있나?


지난 2월 6일(), 정부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의대 정원 2,000명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통보에 반발한 대한의사협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 발표 후 2주 동안 총 8,816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전국 의대생들은 동맹 휴학 운동에 참여하며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 전국 의대생들이 휴학을 이어나가자, 대학교수들도 이에 동참하며 정상적인 의대 시스템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찬-반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견이 제기됐다.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이면에 국민들이 모르는 속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BizOn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살펴보고, 그 너머의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해 봤다.


의대 증원 확대가 이루어진 표면적 이유

먼저, 의사 수 부족으로 인한 불필요한 생명 손실이다. 일명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응급실 부족 문제는 오래전부터 한국 의료계의 고질병으로 진단되어 왔다. 지난 주말 사이에만 총 18건의 응급실 지연 이송이 발생하였고, 지난 23일 정오 의식장애를 겪던 대전의 A 씨는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지연 이송으로 53분 만에 응급실에 도착했고,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부는 응급실 환자 지연 이송 문제를 해결하고자 ‘긴급상황실’을 설치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고, 이는 국민의 의대 증원 여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지난달 연합뉴스가 의뢰,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4%(늘린다 48%, 적게 늘린다 36%)가 의대 증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전 응급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시행한 여론조사보다 상승한 수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지방 병원 핵심 진료과 부족 문제이다. 수도권 위주의 의료 집중 문제 또한 한국 의료계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그동안 한국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고, 상대적으로 노년층 비중이 높은 지방 병원의 필수 진료과 지원이 줄어들며, 진료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현재 수도권 위주의 의료 집중과 필수과에 대한 홀대는 필수과에 대한 지원 없이 자유경쟁 체계에만 필수 의료를 맡긴 정부의 책임이 크다”면서 “지방 의료의 붕괴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미비해 소아청소년과의 오픈런, 중증 환자의 적절한 치료 지연 등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의대 정원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더라도 필수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곳에서 일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 시스템상으로는 필수 진료과 중, 의사가 부족한 지방 병원에 의사를 강제적(의무적)으로 배치하는 제도는 미약하다. 최근 정부에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지방 병원 인력 부족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의료원장인 조승연씨는 “정부가 발표한 의료정책 패키지 내용은 사실상 매우 조악하다. 물론 그럼에도 그간 의료 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가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소통 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내는 것이 맞지, 이렇게 의사수를 먼저 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비판했다. 또한, 피부과&미용업계 와 같은 비필수 업계로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 의료계에서 의사의 비필수 업계로의 이탈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 왔다. 실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의 자율권을 보호해야 하기에, 비필수 업계로의 이탈을 현실적으로 막기 어렵다.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은 오히려 의료비 상승, 인프라 악화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증원 발표 이후 고통받는 사회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의료 산업계의 혼란이 커져가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브리핑 후 대한 의사협회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해당 파업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며, 의료 공백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실질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80대 노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모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연합 파업으로 인해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의사협회의 파업과 마찬가지로 의대생 8,860여 명(전체 의대 재학생의 44.5%)은 동맹휴학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맞서 동맹휴학을 선포한 전국 의대생들은 3월 20일(수)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확정 발표 브리핑' 이후 동맹휴학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전국의 많은 의대가 1학기의 정상적인 학사일정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의대 정원 증원에 따라 사교육 시장도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의대 증원 정책이 발표된 이후로 종로학원, 메가스터디 학원을 포함한 수많은 재수 종합 학원들은 의대 반을 신설했다. 종로학원 대표 임성호씨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로 주요 대학의 고학년부터 저학년, n수생까지 연쇄적인 학적 이동이 발생할 것”이라 밝혔다. 이처럼 서울권 주요 대학의 학생들도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과열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킬러문항 배제 & 사교육 퇴치 정책'의 의도와 상반되는 결과이다.


의대 증원 확대 정책의 끝은 '2024년 제 22대 총선' 일까?

의대 정원 확대는 역대 정권에서 매번 추진하려 했으나 의료계 종사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계획도 의사들의 집단 휴진,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운동으로 백지화됐다. 이처럼 추진하기 어려웠던 의대 증원 정책을 현 정부가 왜 강행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책 발표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는 4월 10일(수)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그리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한 날은 총선을 두 달 가량 남겨둔 시점이다. 언론 조사 업체 ‘한국 갤럽’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4.10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긍정 평가율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긍정 평가 이유 중 1위는 “의대 정원 확대”로 나타났다. 1년간의 1위는 ‘외교’ 부문이었으나, 2월 말 ‘의대 정원 확대’가 최상위로 부상했고, 이번 주 그 비중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정치계에서 연예계 논란을 폭로하거나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으로 여론의 판도를 뒤집는 일은 매번 발생하는 경우이다. 지난 10월 김건희의 주가조작 의혹 및 특검법 이슈로 여론이 악화되었을 때, 이선균 마약 폭로 사건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다. 수사 과정에서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유흥업소 종업원과 여러 차례 연락한 정황이 발견됐고, 이는 국민의 이목을 한순간에 끌어당겼다. 다수의 정치인이 해당 사건에 대해 정권의 실정을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고 언급했으며, 곧 정치계에서 여론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 예시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의대 증원처럼 파격적인 정책으로 민심을 사로잡는 경우는 드물었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한국 의료산업의 급변하는 노령화 양상에 맞추어 언젠가는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써 의대 정원 확대가 논의되는 것이 아닌, 총선 승리를 위한 증폭제 역할로 이용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시민사회는 정부의 결정을 주제 내에서 단편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