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백] 可高可下(가고가하)

퇴색된 본연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의대 증원


우리는 가난한 민족이었다. 오랜 일제 치하와 해방 직후 찾아온 전쟁으로 가난은 우리의 곁을 맴돌았다. 전쟁이 끝난 뒤 우리 민족, 그리고 우리네 가족은 부모 세대로부터 자녀 세대로까지 가족을 부양하겠단 노력이 넓게는 국가, 좁게는 가정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진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독이 가득했고, 그 문제는 아직 우리 곁에서 맴돌고 있다.


본 기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독은 '직업윤리의 상실'이다. 빠른 경제 성장의 이면에 담긴 자본에 대한 지나친 추구는 직업 본연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부재로 이어졌다. 다양한 직업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분명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직업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이해의 부재는 직업을 선택하고, 진로를 고려할 때 직업이 가진 가치가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 '진로 연계성', '사회적 인식 및 평판'과 같은 것들이 주요한 요소이자 몇 안 되는 요소가 되게 하였다. 그러니 어떠한 직업에 대해 논할 때도 우리의 눈은 그 직업이 가진 사회적 평판과 위치와 같은 잣대를 중점에 두고 논하게 되었다.


직업윤리가 가장 만연하게 논의되고, 그 잣대가 확실해지는 직종이 있다면 평범한 시민이지만 공인이기도 한 '공무원'일 것이다. 특히 군인과 경찰이 그러한데, 군인을 논할 때 나라의 방패라 칭하는 것과 경찰을 논할 때 민중의 지팡이라 칭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직업윤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자주 덮이고 미미한 곳이 사 자 직업군이다.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의사, 중요범죄에 대한 독자적 수사를 통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 억울한 이를 변호하는 변호사, 돈을 정직하게 관리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지키는 회계사는 모두 사회적 평판이 매우 높지만, 그에 비해 폐쇄성이 매우 높다. 일찍부터 쌓여온 엘리트 집단이라는 인식은 폐쇄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고, 폐단은 조용히 또 빠르게 커졌다. 그렇게 폐쇄성에서 시작된 바람은 본질적 가치의 변질을 쉽게 이끌었고, 소위 말하는 카르텔 형성과 집단이기성, 직업이기주의의 성장과 지나친 이익 추구로 이끌었다.




제네바 선언(1948)의 히포크라테스 선언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1.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2.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3.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4.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5.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6.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7.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8.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9.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10.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안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11.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의대 증원에 관한 본 기자의 의견 중 하나도 직업윤리의 부재이다. 제네바 선언(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개정본; 현재 사용되는 의사 선서문)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의사는 환자와 그 생명, 인류에 대한 봉사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근무 지역과 무관하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들이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서울에 남기를 바라고, 필수과보다 수익이 높은 과를 선택하는 편중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다. 또 OECD 평균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평균에 못 미치는 것은 이미 만연한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일방적 대화 거부, 전공의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와 반대되는 인력 증원에 대한 반대로 인해 보이는 '자가당착'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이 일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정부 쪽에 기울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의협이 실질적인 타협점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 백지화와 정부 책임 시인, 특수성·전문성 인정에 대한 요구와 같은 것들로 본인의 수를 명확히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양면성이 존재하는 만큼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이 보여온 행동은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정부의 행동에 더욱 힘을 실어줄 뿐이다.


의사에 대한 본 기자의 존중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 학업에 열중하여야 하고, 의대라는 목표에 다다른 뒤에도 6년이 넘는 시간을 바쳐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성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진정 총명하고 영리한 이들이, 어떤 것이 두려워 직업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말이다. 본 기자의 두 눈에 비치는 빛바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인제 그만 제자리로 돌아오라 소리친다. 오른손 하늘 높이 들어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겠노라고 맹세한 그날을 잊지 말고 제자리로 돌아와 본분을 다하라고 외친다. 진정 의사가 본인을 이 사회의 엘리트라 생각한다면 이제 본인들의 특권을 빼앗기는 것을 그만 두려워하고, 국민의 목에 칼을 대는 것이 아닌 아픈 이들을 위해 메스를 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