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강타하는 반유대주의논란

칸예 웨스트 논란의 발언, 무엇이 문제였나?


지난 915, 미국의 SPA 브랜드 ‘GAP’은 힙합 아티스트 칸예 웨스트(이하 칸예)와의 10년 협업을 파기했다. 이에 칸예는 모두가 내가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왕은 남의 성에서 살 수 없다.’라고 언급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당시에는 누구의 잘못으로 협업이 파기되었는지 이유를 분석하고자 했지만, 현재는 이유 불문 GAP의 선견지명이 빛났던 순간이라 말하고 있다. 바로 10월 칸예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단 한 줄’ 때문이다.


이전에도 극단적인 정치 성향으로 숱하게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칸예는 10월 7일, 인스타그램 계정이 정지되자 트위터에 '이것 봐, 마크. 어떻게 나를 인스타그램에서 쫓아낼 수 있어? 넌 내 친구였잖아'라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10월 9일 칸예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밤 조금 졸린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유대인들에 대해 "데스콘 3"을 발동할 것'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데스콘 3"은 미군 방어준비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에 빗댄 것으로, 칸예의 이 트윗은 유대인을 학살하겠다는 심각한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칸예가 무슨 목적으로 이 트윗을 올렸는지에 대해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유대인인 마크 저커버그를 향한 발언이었다는 추측이 많다.


▲ 칸예 웨스트의 트위터 발언 (출처: 뉴스1 코리아)


이전까지 칸예는 지속적인 논란 속에서도 커리어를 이어왔지만, 이번 트위터 발언은 상상 이상의 파장을 몰고 왔다. 우선 미국 최대의 유대인 단체, 반 명예훼손연맹 ADL(Anti-Defamation League)의 규탄 성명을 시작으로 JP 모건 체이스 은행, 아디다스, 발렌시아가, 보그, 할리우드 에이전시 CAA 등 그와 협업 관계에 있던 모든 기업이 협업 중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더 나아가칸예가 설립한 굿뮤직(G.O.O.D Music) 레이블과 데프잼 레코딩스(Def Jam Recordings)에서도 더 이상 칸예와 함께할 수 없다며 그를 퇴출시켰다이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줄줄이 칸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고, 칸예가 설립한 스포츠 전문 에이전시 ‘DONDA Sports’ 소속 선수들도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손절 릴레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앞선 상황 때문에 힙합 장르를 넘어 21세기 가장 위대한 뮤지션으로 평가받던 칸예의 커리어는 송두리째 끝장날 위기에 처했다.


미국 내 유대인의 역사와 영향력

그렇다면 미국 사회에서 반유대주의는 얼마나 민감한 이슈이기에 이 정도 파장을 가지고 오는 것일까? 우선 과거 미국에서 벌어졌던 반유대주의정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은 18~20세기를 전후로 종교박해, 인종차별 등 다양한 계기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들은 대부분 상업이나 예술계에 종사하게 되었다. 특히 초기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강조했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군의 장교가 되는 것도 가능했으며, 명문대학교의 입학에도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남북전쟁, 세계 대전을 거치며 미국 경제도 타격을 입자, 일반 대중들에게 유대인은 스스로 물건은 만들지도 않으면서 금융이나 상업으로 폭리를 취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어 미국에서도 반유대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특히 1920년대 포드 모터스를 창립한 헨리 포드는 자신이 창간한 '디어본 인디펜던트' 주간지에 유대인 자본가의 행태를 비난하는 글을 91호에 걸쳐 기고하며 미국 내 반유대주의 정서에 불을 붙였다. 또한 건국 초기 유대인들의 입학을 막지 않았던 하버드, 예일을 비롯한 명문대학교들도 이 시기에 유대인 학생의 입학을 일정 수 이하로 한정하는 방책을 내놓았다.


▲ 주간지에 실린 '세계의 문제 국제 유대인' 게시글  (출처: 1920년 디어본 인디펜던트)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중 홀로코스트로 일컬어지는 유대인 대학살 정책이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고, 최종적으로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들이 전쟁에 패하며 미국 내 반유대주의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었다. 특히 1947년 반유대주의를 비판한 영화 신사협정이 미국 아카데미 상을 받는 등 전후 2년 만에 신속한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이전부터 다졌던 경제력을 발판 삼아 수많은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사회 내에서 빠르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요직에 유대계 미국인들이 다수 진출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트럼프 정부 부통령 마이크 펜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유대계 미국인들이 정계, 연예계를 가리지 않고 미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또한 2014년 퓨 리서치의 통계에 따르면 44% 이상의 유대계 미국인들이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 가구에 속해있으며 이는 미국 내 모든 인종 중 최고 수준이다.


이번 칸예의 발언이 큰 파장을 가지고 온 이유

상술한 이유로 인해 미국 내에서 유대계 미국인들은 강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2006년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을 지지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국가이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 유럽을 비롯한 미국 내에서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러한 분위기에서 반유대주의’, ‘나치즘을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 금기에 가깝다. 특히 이번 칸예의 반유대주의적 인종차별 발언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이에 동조하는 네오나치세력들이 다시금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칸예가 게시한 문제의 트윗 이후 일부 네오나치 단체들은 칸예가 옳다는 현수막을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고가에 게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조지아-플로리다 대학 축구 경기 중 경기장 외부에도 칸예의 의견에 동조하는 뜻을 담은 반유대적 혐오 발언이 담긴 피켓을 들고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113NBC 뉴스에 따르면 칸예는 과거 자신이 내뱉은 히틀러 미화, 반유대주의적 발언을 수습하고자 돈으로 무마했다는 폭로가 나오는 등 칸예를 둘러싼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 칸예의 발언을 옹호하는 네오나치, 반유대주의 단체 (출처: 더블유 코리아)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칸예를 향한 기업들의 손절 릴레이를 지켜보며 흑인 혐오로 인한 시위 때는 가만히 있었던 기업들이 이번에는 왜 이렇게 예민한가?’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인종차별 문제를 넘어 유대인들을 둘러싼 유럽-미국의 인식, 역사를 함께 두루 고려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유대인들이 타지에서 겪었던 박해와 탄압받던 과거는 물론, 현재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칸예의 이번 발언은 미국 사회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며 그 결과를 고스란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역시 소수자를 향한 인종차별이다. 여전히 미국 내에서는 인종차별 섞인 생각과 의견이 몇몇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현재 인종차별에는 그에 걸맞은 즉각적인 규탄과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안기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칸예의 발언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의 인종차별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 과연 칸예는 그가 촉발한 논란에 사과하고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까? 아직 침묵하는 칸예의 트윗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